교육 및 일반자료

발도르프학교 밖에서 바라보는 교육예술 - 아이즈너의 '교육적 상상력'

작성자
권영진
작성일
2020-11-08 20:18
조회
167
#1 : 프롤로그

공교육에서 대안교육, 대안교육 중에서도 발도르프 교육으로의 전회(轉回)를 경험하며 지인들이 저에게 종종 물어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발도르프는 뭐가 달라?’


사실 저도 이 질문의 명징한 답을 찾기 위해 계속적으로 고민 중입니다. 저도 이 고민을 하는 중이기에 많은 분들께 질문하고 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혹자는 ‘발달단계’라는 키워드로, 혹자는 ‘예술’이란 키워드로, ‘인지학’이란 키워드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에서 발도르프 교육이 갖는 ‘진정성’과 ‘깊이’를 깨달을 수 있으면서도 마음 한 편에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그 불편함이 뭐일까 고민을 해보니 특유의 배타성(排他性)이 느껴진 것 같습니다. 이 교육이 지금의 시대 혹은 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곳에서의 교육은 특별하면서도 현 시대의 교육적 고민과 방향을 같이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래서 오늘 동림가족분들과 나누고 싶은 책은 발도르프 교육 이전에 저에게 교육에 대한 관념을 깨준 아이즈너의 ‘교육적 상상력’이란 책입니다.

 

 

#2 : 타일러의 목표중심교육과정

아이즈너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서 소개할 한 인물이 있습니다. 이전에 교육과정의 기본이 된 사람이자 지금까지도 맹위(猛威)를 떨치고 있는 이는 타일러(R.W.Tyler)라는 사람입니다. 이 분은 한 수업, 혹은 한 교육과정의 모형을 과학적 방법론을 바탕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목표중심교육과정> 교육목표선정 -> 학습경험선정 -> 학습경험조직 -> 평가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도 이 부분만 봐도 딱 느껴지시는 것이 있지 않나요? 네, 아마 이 글을 보고 있는 많은 부모님이나 선생님들께서 공교육에서 받았던 수업의 형태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이전에 가끔 장학사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각 선생님들이 수업시연을 하실 땐... 맨날 적지도 않으셨던 수업목표를 정갈한 글씨로 쓰시고, 수업을 열심히 진행하신 후 질문이나 몇몇 문제로 마무리 했던 것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3 : 목표중심교육과정의 명과 암

이런 교육과정의 체계화 혹은 과학화는 공교육이 확산되고 안정화되는데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논리적인 일관성과 명확성이 담보가 되는 모형이기에 쓰기 쉬우면서도 그 당시 교사들에게는 목표 달성에 대한 책임성을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든 좋은 점이 있으면 아쉬운 점도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목표와 결과의 강조, 다양성과 과정의 소홀


일관성과 명확성을 담보하는 것을 바꿔 이야기하면 마치 공장에서 기계가 짜이듯 교육과정이 편성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개개인 아이들이 어떤 아이인가보단 교육에서의 목표와 결과가 핵심으로 되는 점, 일관성이란 명목하에 다양성이 교실현장에서 사라지는 점입니다.

제가 대학생활을 할 당시–어쩌면 지금까지도- 우리나라에서의 이 목표중심교육과정의 힘은 강력했습니다. 당시 저는 이런 배움이 흥미로우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흥미는 ‘내가 배웠던 수업들이 이렇게 이뤄졌구나’란 깨우침에서, 안타까움은 ‘이것이 변화해야할 것 같은데, 과연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변화를 하기 위해 내가 참고할 다른 이론이나 교육학자는 없는 것일까?’란 아쉬움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4 : 아이즈너가 제시한 대안 -> 교육이란 예술

이에 대한 답을 ‘아이즈너’의 교육적 상상력이란 책을 통해 찾아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즈너는 수업, 혹은 교육과정이 운영이 되는 과정이 절대 하나의 목표로만 진술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수업이란 활동은 하나의 교사와 학생이 교실이란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예술’이며 이 예술을 하기 위해선 교사의 ‘상상력’이 중요하다가 이 책 내용의 골자입니다. 그래서 학생이 무엇인가를 성취한 것은 양적인 점수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실에서 보이는 성취, 혹은 상호작용을 감지해내는 교사의 ‘감식안’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 성취는 점수만 기재된 성적표가 아닌 감식안을 바탕으로 언어로 서술된 교육비평 문서로 표현될 수 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이 익숙치 않은가요?


 그렇습니다. 이것은 사실 저희 동림자유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의 하려는 것이 잘 구현된 수업을 보면, 마치 이 수업 자체가 예술과 같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은 수업이 예술이란 생각으로 그 예술을 구현하려고 노력하시고요, 모든 교사는 교육적 감식안을 통해 학생 관찰을 꾸준히 하고요(그리고 부모님께도 요청드리죠.), 마지막의 생활기록부는 점수가 아닌 시와 비평이란 양식으로 표현됩니다.

저는 발도르프 교육이 어딘가에 떨어진 섬과 같이 존재하거나 배타적(排他的)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지금 현 시대에 필요한 것이면서도 주류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교육과정에 대한 개념과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제 생각일까요? 아래의 글은 교육적 상상력이란 책, 9장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참고로 이 책이 쓰인 시기는 1979년입니다.)

 

 

#5 : 수업이라는 예술에 대하여 (발췌1)

오늘날 수업(teaching)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은 수업을 어떻게 과학화시킬 수 있는가에 거의 대부분의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수업은 교사가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는 다양한 믿음 또는 일반화나, 개인적 요구, 그리고 교육적 가치에 의해 인도되는 일종의 예술이다. 수업이 일종의 예술이라고 하는 의미가 이해될 때 비로소 과학적 교수법이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

 

수업은 다음과 같은 적어도 네 가지 의미에서 예술이라고 생각될 수 있다.


첫째, 수업은 일정한 수준의 기량(skill)과 호의(grace)를 가져야 수행되므로 교사나 학생 양쪽다 심미적(aesthetic)이라고 특징지을 수 있는 경험을 겪게 된다는 의미에서 예술이다. 교사가 교실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는 예술적 표현의 한 형태를 구성하게 된다.

둘째, 교사는 마치 화가, 작곡가, 배우, 무용가와 마찬가지로 행위과정중에 나타나는 질에 크게 의존해서 판단을 한다는 의미에서 수업은 예술이다. 템포, 톤, 분위기, 토론의 진행속도, 진도 등과 같은 학급의 질을 선택하고, 조정하고, 조직하는 데 지성(intelligence)의 질적인 형태가 사용된다.

셋째, 교사의 활동은 단순한 처방이나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일에 의해 지배받지 않고, 예측 못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이나 질의 변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수업은 예술이다. 교사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늘 신선한 사고와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교사가 교실에서 발생하는 것에 대해 에너지와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은 레퍼터리와 루틴한 것을 통해서다. 잘 개발된 루틴한 것이나 수업 레퍼터리를 확보하고 있는 교사는 교실에서 발생한 일들에 대해 창의력이 풍부하게 처리해나갈 수 있다. 수업을 다른 예술처럼 매우 복잡한 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자동성(automaticity)과 창의성(inventiveness) 사이의 긴장이다. 평범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자동성이나 능력이 없다면 에너지는 소모되고 창의성은 시들어버린다. 하지만 반응이 너무 자동적이거나 루틴하다면, 그래서 너무 반사적으로 된다면 교사의 창의적인 능력은 훼손된다. 수업은 독창성을 위한 기회라기보다 오히려 루틴한 반응의 연속이 된다.

넷째, 성취하려는 목표가 종종 그 과정 속에서 창조된다는 의미에서 수업은 예술이다. 수업은 달성된 목표중의 많은 것이 급작스러운(emergent), 즉 미리 설정되어 효과적으로 달성된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찾아지는, 인간 활동의 한 형태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미리 설정된 목표가 공식화되는 상황이란 없다 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수 목표를 분명히 구체화하자는 주장은 대부분 수업의 본질은 그러한 목표의 효과적인 달성에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수업모델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수업을 일련의 알고리즘의 기능만으로 수준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정 속에서나 결과(outcomes)의 사후분석에서 목표를 창출해낼 기회는 다른 예술과 비슷한 수업의 모델을 요구한다.

이러한 네 가지 의미에서, 즉 수업이 미학적 경험의 원천이며, 질을 인지하고 조정하는 데 따라 달라지며, 체험적이거나 모험적인 활동이며,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나타나는 목표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수업은 일종의 예술로서 간주될 수 있다.

 

 

#6 : 교육의 예술성 (발췌2)

교실에서 예술적으로 활동하는 교사는 학생들에게 예술적인 경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탐구와 모험을 환영하고 놀이를 즐기는 성향을 촉진하는 분위기를 제공한다. 사고를 가지고 놀 수 있다면 새로운 결합을 시도하고 새로운 실험을 하고 “실패”까지도 자유롭게 느끼게 한다. 글자만의 인식에서 벗어나 환상, 은유, 건설적 바보스러움이 일어날 수 있다. 놀이를 통해 사고의 한계를 발견하고 능력을 시험해보며 게임법칙을 찾아내서 놀이에서 게임으로, 숫자계산법에서 자발적인 발견에로, 새로운 구조를 탐색하는 일에서 법칙을 지키려고 하는 일로 옮겨가는데 이는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쌓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놀이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나, 게임은 이미 설정된 범위내에서 가능성을 찾아낸다.

과학실험, 예술 등 각 영역에서 독자적인 배경을 가지고 그 형태와 법칙이 다르기는 하지만 발명과 창조의 도구로서 놀이가 필요하다는 것은 공통적이다. 그러한 환경이 조성되려면, 교사 자신이 혁신적이고 탐구하며 놀이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결코 공장의 조립라인을 본딴 행위와는 다르다. 교육목표는 가르치는 행위 중에 변화되고, 그 목표는 불확실하며, 또 모든 학생에게 똑같지 않다. 교사는 수업현장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그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지적인 유연성(intellectual flexibilities)이 필요하다.

 

언제 목표를 변경할지, 언제 새로운 상호작용(interactions)을 탐색해야 하는지, 언제 전략을 변경해야 할지를 아는 것, 이것을 Dewey는 유연한 목표 설정(flexible purposing)이라고 불렀다.


가르치는 게 뛰어나려면 예술성이 요구된다는 말은, 교사는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말이며, 목표나 의도가 유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합리적인 행위는 그 목표가 분명하고 단일해야 한다는 믿음과는 모순된다. 합리적이려면 의도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합리성의 개념이, 가르친다는 것이 수행되는 방법에 미치는 제한은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만약 가르치는 일이, 우리가 미리 정의를 내리거나 예측할 수 없고 문제를 찾아가는 탐구과정으로 생각한다면, 그러한 합리성의 개념이 갖고 있는 한계는 명백해지기 시작한다. 더구나 목적을 조작가능하게 하려는 지시는 교육과정 개발에서의 교사의 목적을 측정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으로만 제한하려고 하게 된다. 만일 그러한 기술이 없다면 가치있는 목적을 포기하는 일이 늘어나게 된다. 측정능력은 교사가 해야 된다고 믿는 것에 대해 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

 

 

#7 : 에필로그

아이즈너의 주장은 당시의 사회환경에선 꽤나 진보적이면서도 파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비판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살아있는 수업을 고민하는 선생님들 혹은 학부모님들이 한 번씩 거쳐가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수업 혁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수업의 예술성’은 어렵지 않은 개념이며 현 교육계에서도 이를 배경으로 삼고 교육을 연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발도르프는 뭐가 달라?’


여러분은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다른 학교에 비해 수업을 예술적으로 운영하는 곳, 그 수업의 의미가 단순 에포크 수업뿐만 아닌 교육과정부터 학교운영에 이르는 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런 활동이 다른 학교들과 많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지향해야할 바라고 또한 이야기하고 싶어요. 왜냐하면 예술이란 가치가 발도르프만의 전유물이 아닌 현 사회의 많은 교육들이 지향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육에서의 예술성을 보다 알고 싶으시다면, 그리고 발도르프 안에서가 아니라 일반 교육학에서 이야기하는 예술성에 대해 고민하신다면 아이즈너의 ‘교육적 상상력’을 차분히 음미해보시는 것은 어떨지 추천드려봅니다.

 

 

#8 : 마지막 잡설

마지막으로... 발도르프 학교가 예술적인 곳이라고 할 때 받는 오해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몽환적인 5음계 리코더를 연주하고, 아름다운 습식수채화를 그리는 등 많은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발도르프 학교의 예술성은 ‘예술 행위 자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수업이라는 예술을 구현하는 것, 그것을 위해 교사들이 공동체와 협업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 가정에서의 도움으로 그 예술이 잘 구현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등 ‘교육의 모든 부분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곳’이 발도르프 학교이자, 이 학교가 만들어가는 예술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해야할 교육을 한 번 더 고민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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