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및 일반자료

[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1) - 오이리트미의 시작

교육소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3-06 14:30
조회
1090
제1장 오이리트미란

오이리트미의 시작

오이리트미를 처음으로 체험하거나 본 어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발레는 아니고, 춤하고도 다르네요. 약간 노(역자주 :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 같기도 하고....」어린 아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오이리트미 한다」라고 말합니다.
평소에 오이리트미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되면 벌써 말을 조금 고릅니다. 어린이를 위한 오이리트미 공연 개막 전, 관객석에 있는 아이들의 수다가 무대 위까지 들려옵니다. 이건 1학년 아이들이군-.
「오늘은 누가 춤출까.」「아니야, 오이리트미는 춤춘다고 하지 않는 거야. 움직인다고 말하는 거야.」
「오이리트미는 운동예술이야.」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귀동냥에 밝은 3학년 어느 아이겠죠.
「춤」이라고 하기보다도 말 그대로「움직임」. 「움직임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오이리트미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겠지만, 이 이름을 말한 다음에「그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잠깐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이리트미라는 이름, 아니, 이 예술 자체가 아직 새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쯤에서 잠깐 오이리트미 자체에 대해서 언급했으면 합니다.
이「움직임의 예술」은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에의 방향이 모색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싹 튼 문화운동 중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면서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널리 퍼진 것이 몇 가진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세계관「안트로포조피」(인지학)을 기초로 하는 운동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슈타이너는「인간은 신체, 마음, 정신의 3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인간상을 출발점으로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지금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자유발도르프 학교~슈타이너 학교, 생명역동농업, 의학과 예술요법, 새로운 경제이념을 축으로 하는 공동체 은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의 근저에 인간을 신체, 마음, 정신이라는 전체상으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는 인간관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인간관은 사람의 본질을 물질법칙에 따라서만 밝히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통은 혼동되거나 사용법이 애매하기도 한 「마음」과「정신」을 나누어 생각한다는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신체란, 근대 서양의학의 대상인 해부학적 신체에 머물지 않고 동양의학적인「살아있는 몸」으로서의 신체까지를 폭 넓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이란 지(知)·정(情)·의(意), 즉,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 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이란 소위 오감이나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생명을 지탱하는 보편적이며 근본적인 작용을 말합니다. 우리들 속에 사고를 순화함으로써 그러한 정신적인 법칙을 인식하고, 감정과 의지를 단련함으로써 그와 함께 사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신체·마음·정신의 상호 관련 속에서 그 모습을 인식했을 때, 지상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도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되지 않으며,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외부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보편적인 것」을 추구해 갈 수 있다 - 이것이 슈타이너가 목표하는 바였습니다.

사고하는 것을 「세상을 향해서 작용하는 살아있는 힘」이라고 인식하는 부분이, 이른바 책상 위의 철학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정신적인 법칙」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 또한 아닙니다. 다만, 한 사람이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행위나 삶의 방식과 따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또, 진정한 종교란 결코 신앙개조(個條)를 이해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단, 슈타이너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학문이든 종교든 자칫하면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참된 것」「선한 것」「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학문과 종교와 예술은 본래 서로 조화로운 것으로, 우리는 좀 더 건강한 형태로 이 세 가지를 영위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시도를 해 보는 하나의 길로써 슈타이너는 그의 인간관·세계관인「인지학」을 세상에 보였습니다.

새로운 예술인 오이리트미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인지학입니다. 이 예술이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지금까지의 무용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예술의 출발점은 없는가」라고 슈타이너에게 물은 어느 부인의 질문이었습니다.
부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움직이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운동예술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슈타이너의 세계관·인간관에 깊이 수긍할 만한 점이 있었던 그 어머니는 기성의 무용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움직임을 지도해 줄 것을 슈타이너에게 의뢰했습니다.
슈타이너는 그 질문에 답하여 1911년, 그때부터 오이리트미의 기초를 만들어 갔습니다.
당시 17세였던 로리 슈미트라는 그 소녀에게 슈타이너가 준 최초의 과제는「고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무용의 역사를 조사할 것」, 그리고 다음 과제는「알고 있는 그것을 모두 잊을 것」이었다고 합니다.
슈타이너가 새로운 움직임의 원천에 추구한 것은 「언어」였습니다.
언어에 의해서 사람의 내면은 바깥 세계에 전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 사고, 장대한 사상과 세계의 법칙도 언어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시대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언어」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슈타이너는 소녀 로리 슈미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식에 떠올리도록 독려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한 것 전부를 언어로 나타낼 수 있지만, 언어란, 원래는「움직임」이라는 것-.
마음에 생각과 사고가 생기면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의 충동이 일어난다고 슈타이너는 말합니다. 통상 그 충동은 신체 전체의 움직임으로 되지 않고, 그 대신 발성기관을 통하여 목소리가 되어 밖으로 전해집니다.
오이리트미의 움직임은 말을 할 때 목구멍, 입 등의 언어기관에 생기는 움직임의 프로세스를 전신의 움직임으로 바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마음이 놀라움을 기저로 외부 세계를 받아 들였을 때, 목과 입이 열리며「아」라는 소리가 되어 나옵니다.「열림」이「아」라고 하는 모음의 움직임이며, 오이리트미에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양팔을 일정한 각도로 여는 몸짓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반듯하게 서서 위쪽으로 곧게 뻗는 전신의 자세로, 양팔을 대각으로 뻗음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오」는 둥근 발성 그대로 따뜻하게 세계를 감싸는 동작입니다.
자음의 경우는, 발성할 때 내쉬는 숨도 눌리거나 막히거나 튀거나 여러 가지로 변화합니다만, 오이리트미의 자음의 몸짓에도 자연의 다양한 조형작용이 비추어집니다. 「D」에서는 대지와 같은 안정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몸짓을 하고, 「M」에서는 물처럼, 공간에 깊이 스며들어가듯이 양팔을 움직입니다. 「F」는 숨을 불어넣는 바람과 같은 몸짓입니다.
그렇지만, 오이리트미 동작은 언어기관의 움직임을 단순히 모방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슈타이너는 언어의 탐구를 아득한 태초의 「언어」, 요한복음서 첫머리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언어」를,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형성력의 본원적인 운동으로 인식합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완성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완성된 형태는 운동에 의해 생겨 왔다......움직임이 정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데서 정지가 생겨난다. 우리는 오이리트미를 함으로써 태초의 움직임으로 되돌아간다.」라고 슈타이너는 말합니다. 오이리트미의 움직임은, 이 근원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우리 안에서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본래 무용이란 그 시작에 있어서, 사람 내면의 체험을 움직임을 통해서 나타냄과 동시에 사람과 세계의 본질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래의 신전무용은 모두 그러한 성격으로, 고대에는 모든 민족이 저마다 「별들의 원무」를 갖고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봉오도리(역자주 : 음력 7월 15일 밤에 남녀들이 모여서 추는 윤무)의 근원을 찾아가면 그런 계열에 연결되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전무용은 시대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신성한 세계와 접촉하는 것과 같은 체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전통 속에 가라앉아 창조력을 잃어 갔습니다. 한편, 예술양식으로서 확립되어있던 많은 무용에서는 전문화된 신체 기술을 뒤쫓게 되면서 사람의 감정표현이 주가 되어 갔습니다.
오이리트미는 이런 사실의 흐름에 입각해, 현대와 장래를 위한 운동예술로써 탄생했습니다. 세계로부터 분리된 각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고, 반쯤 꿈을 꾸듯이 집단으로 대우주와의 조화 속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공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마음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은 철저히 또렷한 존재임과 동시에, 함께 움직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자각해 가는 것입니다.
신체를 따뜻한 생명력으로 채우고, 섬세하고 유연한 마음을 기르면서, 감정마저도 초월한 법칙과 움직임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오이리트미는 신체와 마음과 정신을, 그리고 사람과 세계를 새롭게 다시 연결시킵니다. 사람의 움직임은 다시 자연스럽고 고귀한 것이 되어 갑니다.

먼저 언어의 움직임부터 기초가 잡힌 오이리트미입니다만, 곧 음악 오이리트미도 시작되었습니다. 언어는 사람을 세계로 향하게 하지만, 사람의 본질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인 음악은 우리를 자신 속의「보다 나아지고자하는 나 자신」으로 향하게 합니다. 언어를 보다 공간적이라고 한다면 음악은 보다 시간적입니다. 「보이는 언어」인 언어 오이리트미와 「보이는 노래」인 음악 오이리트미가 함께 발전해 갔습니다.

다음 글 : 오이리트미의 교육적인 힘(3월 20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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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1) - 오이리트미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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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오이리트미란

오이리트미의 시작

오이리트미를 처음으로 체험하거나 본 어른들 대부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발레는 아니고, 춤하고도 다르네요. 약간 노(역자주 :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 음악극) 같기도 하고....」어린 아이들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오이리트미 한다」라고 말합니다.
평소에 오이리트미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라도 되면 벌써 말을 조금 고릅니다. 어린이를 위한 오이리트미 공연 개막 전, 관객석에 있는 아이들의 수다가 무대 위까지 들려옵니다. 이건 1학년 아이들이군-.
「오늘은 누가 춤출까.」「아니야, 오이리트미는 춤춘다고 하지 않는 거야. 움직인다고 말하는 거야.」
「오이리트미는 운동예술이야.」라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귀동냥에 밝은 3학년 어느 아이겠죠.
「춤」이라고 하기보다도 말 그대로「움직임」. 「움직임의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이 가장 잘 들어맞습니다.
오이리트미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겠지만, 이 이름을 말한 다음에「그건 뭡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잠깐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이리트미라는 이름, 아니, 이 예술 자체가 아직 새로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쯤에서 잠깐 오이리트미 자체에 대해서 언급했으면 합니다.
이「움직임의 예술」은 20세기 초반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후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양한 영역에서 미래에의 방향이 모색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에 싹 튼 문화운동 중에는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면서 나라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 널리 퍼진 것이 몇 가진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상가 루돌프 슈타이너-(1861~1925)의 세계관「안트로포조피」(인지학)을 기초로 하는 운동도 그 중 하나입니다.
슈타이너는「인간은 신체, 마음, 정신의 3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인간상을 출발점으로 폭넓은 분야에서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지금도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자유발도르프 학교~슈타이너 학교, 생명역동농업, 의학과 예술요법, 새로운 경제이념을 축으로 하는 공동체 은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모두의 근저에 인간을 신체, 마음, 정신이라는 전체상으로 새롭게 이해하려고 하는 인간관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인간관은 사람의 본질을 물질법칙에 따라서만 밝히려고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보통은 혼동되거나 사용법이 애매하기도 한 「마음」과「정신」을 나누어 생각한다는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신체란, 근대 서양의학의 대상인 해부학적 신체에 머물지 않고 동양의학적인「살아있는 몸」으로서의 신체까지를 폭 넓게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마음이란 지(知)·정(情)·의(意), 즉, 사람들 각자의 마음이 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신이란 소위 오감이나 단순한 감정을 넘어서 생명을 지탱하는 보편적이며 근본적인 작용을 말합니다. 우리들 속에 사고를 순화함으로써 그러한 정신적인 법칙을 인식하고, 감정과 의지를 단련함으로써 그와 함께 사는 힘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람은 신체·마음·정신의 상호 관련 속에서 그 모습을 인식했을 때, 지상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도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되지 않으며, 또한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유롭게 외부의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보편적인 것」을 추구해 갈 수 있다 - 이것이 슈타이너가 목표하는 바였습니다.

사고하는 것을 「세상을 향해서 작용하는 살아있는 힘」이라고 인식하는 부분이, 이른바 책상 위의 철학과는 어딘가 다릅니다. 「정신적인 법칙」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 또한 아닙니다. 다만, 한 사람이 어떻게 사고할 것인가는 그 사람의 행위나 삶의 방식과 따로 떼어낼 수 없습니다. 또, 진정한 종교란 결코 신앙개조(個條)를 이해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단, 슈타이너가 살았던 시대나 지금이나, 학문이든 종교든 자칫하면 자신만의 영역에 갇혀서 한 쪽으로 치우치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참된 것」「선한 것」「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학문과 종교와 예술은 본래 서로 조화로운 것으로, 우리는 좀 더 건강한 형태로 이 세 가지를 영위해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시도를 해 보는 하나의 길로써 슈타이너는 그의 인간관·세계관인「인지학」을 세상에 보였습니다.

새로운 예술인 오이리트미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도 바로 인지학입니다. 이 예술이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지금까지의 무용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운동예술의 출발점은 없는가」라고 슈타이너에게 물은 어느 부인의 질문이었습니다.
부인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움직이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운동예술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바라고 있었습니다. 슈타이너의 세계관·인간관에 깊이 수긍할 만한 점이 있었던 그 어머니는 기성의 무용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움직임을 지도해 줄 것을 슈타이너에게 의뢰했습니다.
슈타이너는 그 질문에 답하여 1911년, 그때부터 오이리트미의 기초를 만들어 갔습니다.
당시 17세였던 로리 슈미트라는 그 소녀에게 슈타이너가 준 최초의 과제는「고대로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무용의 역사를 조사할 것」, 그리고 다음 과제는「알고 있는 그것을 모두 잊을 것」이었다고 합니다.
슈타이너가 새로운 움직임의 원천에 추구한 것은 「언어」였습니다.
언어에 의해서 사람의 내면은 바깥 세계에 전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감정, 사고, 장대한 사상과 세계의 법칙도 언어에 의해서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시대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언어」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요?
슈타이너는 소녀 로리 슈미트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의식에 떠올리도록 독려했습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한 것 전부를 언어로 나타낼 수 있지만, 언어란, 원래는「움직임」이라는 것-.
마음에 생각과 사고가 생기면 거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움직임의 충동이 일어난다고 슈타이너는 말합니다. 통상 그 충동은 신체 전체의 움직임으로 되지 않고, 그 대신 발성기관을 통하여 목소리가 되어 밖으로 전해집니다.
오이리트미의 움직임은 말을 할 때 목구멍, 입 등의 언어기관에 생기는 움직임의 프로세스를 전신의 움직임으로 바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마음이 놀라움을 기저로 외부 세계를 받아 들였을 때, 목과 입이 열리며「아」라는 소리가 되어 나옵니다.「열림」이「아」라고 하는 모음의 움직임이며, 오이리트미에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양팔을 일정한 각도로 여는 몸짓으로 나타냅니다.
「이」는 반듯하게 서서 위쪽으로 곧게 뻗는 전신의 자세로, 양팔을 대각으로 뻗음으로써 좀 더 확실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오」는 둥근 발성 그대로 따뜻하게 세계를 감싸는 동작입니다.
자음의 경우는, 발성할 때 내쉬는 숨도 눌리거나 막히거나 튀거나 여러 가지로 변화합니다만, 오이리트미의 자음의 몸짓에도 자연의 다양한 조형작용이 비추어집니다. 「D」에서는 대지와 같은 안정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몸짓을 하고, 「M」에서는 물처럼, 공간에 깊이 스며들어가듯이 양팔을 움직입니다. 「F」는 숨을 불어넣는 바람과 같은 몸짓입니다.
그렇지만, 오이리트미 동작은 언어기관의 움직임을 단순히 모방하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슈타이너는 언어의 탐구를 아득한 태초의 「언어」, 요한복음서 첫머리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이 「언어」를, 우리를 살게 하는 생명형성력의 본원적인 운동으로 인식합니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그대로 완성된 형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완성된 형태는 운동에 의해 생겨 왔다......움직임이 정지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데서 정지가 생겨난다. 우리는 오이리트미를 함으로써 태초의 움직임으로 되돌아간다.」라고 슈타이너는 말합니다. 오이리트미의 움직임은, 이 근원적인 생명의 움직임을 우리 안에서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본래 무용이란 그 시작에 있어서, 사람 내면의 체험을 움직임을 통해서 나타냄과 동시에 사람과 세계의 본질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래의 신전무용은 모두 그러한 성격으로, 고대에는 모든 민족이 저마다 「별들의 원무」를 갖고 있었다고도 말합니다. 봉오도리(역자주 : 음력 7월 15일 밤에 남녀들이 모여서 추는 윤무)의 근원을 찾아가면 그런 계열에 연결되어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전무용은 시대가 발전하고 사람들이 신성한 세계와 접촉하는 것과 같은 체험으로부터 멀어짐에 따라, 전통 속에 가라앉아 창조력을 잃어 갔습니다. 한편, 예술양식으로서 확립되어있던 많은 무용에서는 전문화된 신체 기술을 뒤쫓게 되면서 사람의 감정표현이 주가 되어 갔습니다.
오이리트미는 이런 사실의 흐름에 입각해, 현대와 장래를 위한 운동예술로써 탄생했습니다. 세계로부터 분리된 각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고, 반쯤 꿈을 꾸듯이 집단으로 대우주와의 조화 속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공간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시간의 흐름을 생생하게 마음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은 철저히 또렷한 존재임과 동시에, 함께 움직이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자각해 가는 것입니다.
신체를 따뜻한 생명력으로 채우고, 섬세하고 유연한 마음을 기르면서, 감정마저도 초월한 법칙과 움직임과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오이리트미는 신체와 마음과 정신을, 그리고 사람과 세계를 새롭게 다시 연결시킵니다. 사람의 움직임은 다시 자연스럽고 고귀한 것이 되어 갑니다.

먼저 언어의 움직임부터 기초가 잡힌 오이리트미입니다만, 곧 음악 오이리트미도 시작되었습니다. 언어는 사람을 세계로 향하게 하지만, 사람의 본질과 뗄 수 없는 또 하나의 요소인 음악은 우리를 자신 속의「보다 나아지고자하는 나 자신」으로 향하게 합니다. 언어를 보다 공간적이라고 한다면 음악은 보다 시간적입니다. 「보이는 언어」인 언어 오이리트미와 「보이는 노래」인 음악 오이리트미가 함께 발전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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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5) - 1학년, 봄의 들판에서
관리자 | 2017.05.01 | 추천 -4 | 조회 1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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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4) - 마음의 그릇
관리자 | 2017.04.17 | 추천 -5 | 조회 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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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2017년 1학기 신편입부모교육 강의록 - 3회차
관리자 | 2017.04.04 | 추천 -4 | 조회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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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3) - 첫 수업
관리자 | 2017.04.03 | 추천 -4 | 조회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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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2017년 1학기 신편입부모교육 강의록 -2회차
관리자 | 2017.04.02 | 추천 -3 | 조회 1041
관리자 2017.04.02 -3 1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