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및 일반자료

[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4) - 마음의 그릇

교육소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7-04-17 15:01
조회
1037
마음의 그릇

「아, 정신없어.」영어 수업을 마치고 온 교사가 말했습니다.「시작은 좋았는데, 남자아이들이 금방 떠들기 시작하더니 멈추지를 않아.」
「이런 얘기가 생각나네.」라며 미국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는 그 사람이 계속했습니다. 6학년 외국어 수업을 맡고 있던 어느 교사의 체험담입니다. 그 교사도 수업할 때마다 반복되는 몇몇 아이들의 수다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사는 어떻게 했냐하면, 둥근 그릇을 한 개 가져가서는 수업에 앞서 아이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넣어 주세요.」
아이들은 저마다 손수건이나 배지 같은 여러 가지 물건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릇이 커서 차지 않자, 교사는「고마워, 그런데 이걸로는 그릇이 가득차지 않는데.」라며 넣어져 있는 물건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몇 번인가를 더 했을 때, 한 아이가 「선생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넣어도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좋아하는 물건은 바이올린. 하지만 진짜 바이올린을 넣을 수 없어.」「좋아하는 책을 닥치는 대로 넣고 싶지만......」모두가 물건이 아닌「어떤 것」으로 무엇이 좋을까, 오늘 자기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찾아서, 어떤 아이는 말을 하면서, 어떤 아이는 말없이「그것」을 그릇에 넣었습니다.
교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 오늘은 이 그릇이 가득 찼네.」
교실 안에는 어느 샌가 평소의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고요함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자연스레 빚어진 고요함을 알아차리고, 각자가 그 고요함을 만들어내는데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어느 아이가, 선생님이 내민 그릇이 선생님의 마음을 눈에 보이도록 만든 모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 닿기 위한 길을 만든 것은, 분노나 설교가 아니라 단지 자신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단, 절대 소극적이 되지 말고, 주위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서 또 그 공간의 상황에 따라서 제각각 달라도 좋을 것입니다.
내적으로 또렷하게 깨어서 기다리는 것-그런 마음의 자세를 나타내는 말은 무엇일까요? 「자제」는 아닙니다. 그럼 인내?「인내」라고 하면 글자만 보더라도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자제와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자제할 때, 나는 상대에게서 나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선 너무한다, 라고 자신 속에서 판단합니다. 너무하지만 참자. 하지만 인내는 상대에게서 나오는 것을 한 아름 큰 그릇으로 받아서 함께 무게를 지고 간다고 하는 듯합니다. 이야기 속 교사의 인내의 경우, 거기에는 느긋한 여유마저 배어있습니다.
그 교사가「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그 아이 자신」과 매일 매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 안에 「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 속에도「그것」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때뿐입니다.

기쁨 속에 신성, 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들이 나의 가슴에 온 몸으로 뛰어 들어 와 줄때, 반짝하고 빛나는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오이리트미 수업 중, 아이들과 나 사이에, 생생하게 가득 찬 시간이 흐르면, 오이리트미를 하고 있는 교실 전체 공간이 바닥에서부터 숨을 쉽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까칠한 마음 상태가 그대로 언동이 되어 던져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말해버리고 싶어집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만두지 않으면 이렇게 할 거에요, 라고 아이들에게 경고하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나는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그런 일을 하고는 그때마다 침울해집다. 그 방법은 틀렸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도쿄 슈타이너슐레에서 오이리트미 교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1학년 수업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구성할 수 있을까 고투하고 있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체력도 마음의 힘도 강한 어느 남자 아이가, 학급 아이들을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계기로 나의 눈앞에서 다른 아이의 배를 아주 세게 걷어 찬 순간, 나는 그 남자아이를 향해서 다가갔습니다. 남자 아이는 도망갑니다. 둘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당시 보건실로 쓰고 있던 네 장 반의 다다미방에서 따라 잡았습니다. 나는 남자아이의 어깨를 잡고 물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봐도 여유가 없는 표정과 목소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왜 그러는지 선생님에게 말해줘.」남자아이는 울었습니다.「몰라요, 몰라요, 모르겠는데 해버리게 돼요.」
그래, 얼마나 솔직한가, 라고 나는 김이 빠졌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아이의 상태를 주위의 어른들이 받아들이고, 지금은 파괴하듯이 작용하고 있는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도록 애쓰는 방법도 없이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지금 당장 난폭한 행위를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아이와 맞붙어 싸우며, 나는 도덕을 강요하려고 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슈타이너 교육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본질과 성장의 법칙에서부터 아이를 건강하게 하도록 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법칙을 어떻게 개별로 변용시킬 것인가-여기에 교육 예술의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슐레에서 처음으로 오이리트미를 맡았던 학급은, 인원도 단 여섯 명,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수 적인 균형도 나쁘고, 게다가 담임교사가 1학기만에 교체되는 큰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당시의 학교 건물은 도심에 있는 건물로 도로에 바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1학년 2학기, 3학기에 새롭게 담임을 맡은 교사가 아이들과 학급을 만들려고 하는 결사적인 노력을 보면서, 실제로는 오이리트미 수업도 시간대로 시작할 수 없다던가, 아예 못한다던가 해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슐레는 어떤 사람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미하엘라 글렉클러라는 의사로, 슈타이너교육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고, 교육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교사들에게 주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슐레와 아이들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보고, 오이리트미 수업을 위한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 힘 센 남자아이의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말했습니다. 「Er ist ja ein goldenes St?ck. ~ 그 아이는 금 덩어리에요.」그 아이 안에 있는, 닦아주면 빛이 날 황금에 내 마음을 향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다음, 학급이 열 명 이하의 인원일 경우, 살아있는 하나로 결속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두드러진다는 것, 그러므로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한 사람씩 저마다 다른 오이리트미 연습을 하면, 아이들에게도 학급 전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매일 십분이라도 좋으니까, 한 사람씩 7주간. 가장 좋은 건 아침, 첫 수업 전입니다.」
저 아이를 위해서는 모음의 「아」를 큰 동작으로, 저 아이에게는 리듬을 발로 걷는 연습, 간단한 걷기로 시작해서 조금씩 변화시켜 가면 좋고, 다른 아이에게는 지수화풍, 자연의 요소 각각의 특징을 갖는 자음이 조합된 시를 만들어서 움직이면 좋다는 등 계속해서 일러 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듣고 있는 동안 내 속에서 짧은 암시가 금세 구체적으로 되어 아아, 이 연습은 이런 시를 이런 식으로 움직이자, 하는 등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이 연습을 치료 오이리트미로써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교육적인 도움으로,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

7주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일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른들 수업도 몇 개인가 쉬어야 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 쪽임을 금방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교원들과 부모들의 이해를 얻어, 곧 7주간의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보건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들도 그것을 위해서 여느 때보다 일찍 왔습니다. 한 사람씩 시간을 겹치지 않도록 해서, 10분에서 15분씩 연습했습니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결코 쿵쾅쿵쾅 거리지 않는 조용한 발소리입니다. 장지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표정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대에 눈을 빛내고 있기도 합니다만, 모든 아이들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는 마음을 온몸으로 나타내며 내가 준비한 시의 모음과 자음의 동작을 하고, 리듬을 걷고 뛰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그 날 안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오늘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지, 무엇을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아이들과 나 사이에, 바라보고 바라보여지는 관계가 생기고, 그것은 매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자라났습니다.
7주 후, 부모와 교사들을 불러서 아침 오이리트미 연습 발표회를 했습니다. 모든 아이가 자신은 이것을 익혔다,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모습을 진지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모두의 앞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마음을 기울여 자기 자신에게 힘을 쏟는 모습을, 어른도 학급의 아이들끼리도 서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아이가 꼿꼿하고 바르게 서 있는 모습을 처음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라고 어느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시작입니다. 그 후의 오이리트미 수업이 항상 낙원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 아이들로부터 나는 슈타이너 교육의 교사가 되기 위한 기반을 하나 배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감정에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있을까요.」라고 슈타이너는, 이제부터 아이들 앞에 서고자 하는 어른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오로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서만 답할 수 가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언어로 이야기해도 아이들의 의지를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없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옳음에의 감정을 아이들 안에 불러일으키는 것, 우리가 옳다고 믿는 일에 주의를 향하게 하고,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자기가 믿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것은 예술가가 연습을 거듭하며 조금씩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행위와 같습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지그시 가라앉히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요한 수면이 나타납니다. 수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바닥까지 고요해집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장난치거나 웃거나 해도」라고 슈타이너를 말합니다.「우산을 갖지 않고 외출했다가 장대비를 만났을 때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신을 강하고 깊게 만들어 주십시오.」
즉,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음, 아직까지도 좀처럼 안 되는 일이야, 라고 자기인식을 하면서도 이 말을 읽을 때마다, 나는 기운이 납니다. 이 말처럼 살려고 하는 것이 나의 얕은 마음의 용량을 조금씩 깎아서 깊게 해 줍니다.
동료의 이야기에 나왔던 교사의 「그릇」은 깊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앞에, 보이는 형태로 그것을 계속해서 내민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행한 사람의 마음의 용량과 행위가 똑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소란스러울 때의 처방전」으로 커다란 그릇을 학급에 가져간다 해도 왠지 우스울 뿐입니다.
수동적이지 않은 적극적인 인내도 잔(杯)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잔은 분명 부으면 부을수록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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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소위] 슈타이너교육과 오이리트미(4) - 마음의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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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그릇

「아, 정신없어.」영어 수업을 마치고 온 교사가 말했습니다.「시작은 좋았는데, 남자아이들이 금방 떠들기 시작하더니 멈추지를 않아.」
「이런 얘기가 생각나네.」라며 미국에서 실습을 한 적이 있는 그 사람이 계속했습니다. 6학년 외국어 수업을 맡고 있던 어느 교사의 체험담입니다. 그 교사도 수업할 때마다 반복되는 몇몇 아이들의 수다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사는 어떻게 했냐하면, 둥근 그릇을 한 개 가져가서는 수업에 앞서 아이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여러분의 소중한 것을 넣어 주세요.」
아이들은 저마다 손수건이나 배지 같은 여러 가지 물건을 넣었습니다. 하지만 그릇이 커서 차지 않자, 교사는「고마워, 그런데 이걸로는 그릇이 가득차지 않는데.」라며 넣어져 있는 물건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몇 번인가를 더 했을 때, 한 아이가 「선생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넣어도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좋아하는 물건은 바이올린. 하지만 진짜 바이올린을 넣을 수 없어.」「좋아하는 책을 닥치는 대로 넣고 싶지만......」모두가 물건이 아닌「어떤 것」으로 무엇이 좋을까, 오늘 자기 마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찾아서, 어떤 아이는 말을 하면서, 어떤 아이는 말없이「그것」을 그릇에 넣었습니다.
교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마워, 오늘은 이 그릇이 가득 찼네.」
교실 안에는 어느 샌가 평소의 소란스러움이 아니라 고요함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자연스레 빚어진 고요함을 알아차리고, 각자가 그 고요함을 만들어내는데 관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계기가 된 것은, 어느 아이가, 선생님이 내민 그릇이 선생님의 마음을 눈에 보이도록 만든 모양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사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가 닿기 위한 길을 만든 것은, 분노나 설교가 아니라 단지 자신은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모습을 계속 보여준 것이었습니다.
좋은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다림」입니다. 단, 절대 소극적이 되지 말고, 주위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면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서 또 그 공간의 상황에 따라서 제각각 달라도 좋을 것입니다.
내적으로 또렷하게 깨어서 기다리는 것-그런 마음의 자세를 나타내는 말은 무엇일까요? 「자제」는 아닙니다. 그럼 인내?「인내」라고 하면 글자만 보더라도 고통스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자제와 비교해 보면, 차이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자제할 때, 나는 상대에게서 나오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선 너무한다, 라고 자신 속에서 판단합니다. 너무하지만 참자. 하지만 인내는 상대에게서 나오는 것을 한 아름 큰 그릇으로 받아서 함께 무게를 지고 간다고 하는 듯합니다. 이야기 속 교사의 인내의 경우, 거기에는 느긋한 여유마저 배어있습니다.
그 교사가「지금 보이고 있는 모습보다 나아지고자 하는 그 아이 자신」과 매일 매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 안에 「보다 나아지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내는 것은 자신 속에도「그것」이 있는 것을 알고 있을 때뿐입니다.

기쁨 속에 신성, 이라고 이름붙이고 싶을 정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들이 나의 가슴에 온 몸으로 뛰어 들어 와 줄때, 반짝하고 빛나는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듭니다. 오이리트미 수업 중, 아이들과 나 사이에, 생생하게 가득 찬 시간이 흐르면, 오이리트미를 하고 있는 교실 전체 공간이 바닥에서부터 숨을 쉽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까칠한 마음 상태가 그대로 언동이 되어 던져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심각한 상태라고 말해버리고 싶어집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지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그만두지 않으면 이렇게 할 거에요, 라고 아이들에게 경고하고 싶어집니다. 실제로 나는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이나 그런 일을 하고는 그때마다 침울해집다. 그 방법은 틀렸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도쿄 슈타이너슐레에서 오이리트미 교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서, 1학년 수업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구성할 수 있을까 고투하고 있었을 무렵의 일입니다.
체력도 마음의 힘도 강한 어느 남자 아이가, 학급 아이들을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거나 하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소한 계기로 나의 눈앞에서 다른 아이의 배를 아주 세게 걷어 찬 순간, 나는 그 남자아이를 향해서 다가갔습니다. 남자 아이는 도망갑니다. 둘이서 계단을 뛰어 올라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당시 보건실로 쓰고 있던 네 장 반의 다다미방에서 따라 잡았습니다. 나는 남자아이의 어깨를 잡고 물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봐도 여유가 없는 표정과 목소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왜 그러는지 선생님에게 말해줘.」남자아이는 울었습니다.「몰라요, 몰라요, 모르겠는데 해버리게 돼요.」
그래, 얼마나 솔직한가, 라고 나는 김이 빠졌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아이의 상태를 주위의 어른들이 받아들이고, 지금은 파괴하듯이 작용하고 있는 힘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도록 애쓰는 방법도 없이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어쨌든 지금 당장 난폭한 행위를 그만두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차원에서 아이와 맞붙어 싸우며, 나는 도덕을 강요하려고 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슈타이너 교육을 한다는 것은 사람의 본질과 성장의 법칙에서부터 아이를 건강하게 하도록 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길어 올리는 일입니다. 일반적인 법칙을 어떻게 개별로 변용시킬 것인가-여기에 교육 예술의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슐레에서 처음으로 오이리트미를 맡았던 학급은, 인원도 단 여섯 명,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수 적인 균형도 나쁘고, 게다가 담임교사가 1학기만에 교체되는 큰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당시의 학교 건물은 도심에 있는 건물로 도로에 바로 맞닿아 있었습니다.
1학년 2학기, 3학기에 새롭게 담임을 맡은 교사가 아이들과 학급을 만들려고 하는 결사적인 노력을 보면서, 실제로는 오이리트미 수업도 시간대로 시작할 수 없다던가, 아예 못한다던가 해서,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슐레는 어떤 사람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미하엘라 글렉클러라는 의사로, 슈타이너교육 운동에도 깊이 관여하고, 교육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교사들에게 주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시작된지 얼마 안 된 슐레와 아이들의 상태를 한 눈에 알아보고, 오이리트미 수업을 위한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어느 힘 센 남자아이의 이야기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말했습니다. 「Er ist ja ein goldenes St?ck. ~ 그 아이는 금 덩어리에요.」그 아이 안에 있는, 닦아주면 빛이 날 황금에 내 마음을 향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다음, 학급이 열 명 이하의 인원일 경우, 살아있는 하나로 결속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이 두드러진다는 것, 그러므로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한 사람씩 저마다 다른 오이리트미 연습을 하면, 아이들에게도 학급 전체에도 크게 도움이 될 거라고 말을 이었습니다.
「매일 십분이라도 좋으니까, 한 사람씩 7주간. 가장 좋은 건 아침, 첫 수업 전입니다.」
저 아이를 위해서는 모음의 「아」를 큰 동작으로, 저 아이에게는 리듬을 발로 걷는 연습, 간단한 걷기로 시작해서 조금씩 변화시켜 가면 좋고, 다른 아이에게는 지수화풍, 자연의 요소 각각의 특징을 갖는 자음이 조합된 시를 만들어서 움직이면 좋다는 등 계속해서 일러 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듣고 있는 동안 내 속에서 짧은 암시가 금세 구체적으로 되어 아아, 이 연습은 이런 시를 이런 식으로 움직이자, 하는 등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이 연습을 치료 오이리트미로써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교육적인 도움으로,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습니다. 」

7주간,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연습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일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 되고 어른들 수업도 몇 개인가 쉬어야 했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이들 쪽임을 금방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교원들과 부모들의 이해를 얻어, 곧 7주간의 연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 보건실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아이들도 그것을 위해서 여느 때보다 일찍 왔습니다. 한 사람씩 시간을 겹치지 않도록 해서, 10분에서 15분씩 연습했습니다.
정해진 시각이 되면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결코 쿵쾅쿵쾅 거리지 않는 조용한 발소리입니다. 장지문을 열고 인사를 하는 표정은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대에 눈을 빛내고 있기도 합니다만, 모든 아이들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거라는 마음을 온몸으로 나타내며 내가 준비한 시의 모음과 자음의 동작을 하고, 리듬을 걷고 뛰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그 날 안에 기록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오늘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교실에 들어와서 인사를 했는지, 무엇을 어떤 식으로 움직였는지-아이들과 나 사이에, 바라보고 바라보여지는 관계가 생기고, 그것은 매일 살아있는 생물처럼 자라났습니다.
7주 후, 부모와 교사들을 불러서 아침 오이리트미 연습 발표회를 했습니다. 모든 아이가 자신은 이것을 익혔다,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모습을 진지하게, 하지만 자연스럽게 모두의 앞에서 보여주었습니다. 모든 아이가 마음을 기울여 자기 자신에게 힘을 쏟는 모습을, 어른도 학급의 아이들끼리도 서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아이가 꼿꼿하고 바르게 서 있는 모습을 처음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라고 어느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시작입니다. 그 후의 오이리트미 수업이 항상 낙원과 같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단, 아이들로부터 나는 슈타이너 교육의 교사가 되기 위한 기반을 하나 배웠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의 감정에 좋은 영향을 줄 수가 있을까요.」라고 슈타이너는, 이제부터 아이들 앞에 서고자 하는 어른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해서는 오로지 반복되는 행위를 통해서만 답할 수 가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언어로 이야기해도 아이들의 의지를 옳은 방향으로 향하게 할 수 없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옳음에의 감정을 아이들 안에 불러일으키는 것, 우리가 옳다고 믿는 일에 주의를 향하게 하고,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시키는 것.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자기가 믿는 행위를 반복한다. 이것은 예술가가 연습을 거듭하며 조금씩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행위와 같습니다. 일어나는 생각을 지그시 가라앉히면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요한 수면이 나타납니다. 수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바닥까지 고요해집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장난치거나 웃거나 해도」라고 슈타이너를 말합니다.「우산을 갖지 않고 외출했다가 장대비를 만났을 때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신을 강하고 깊게 만들어 주십시오.」
즉,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일어나는 일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음, 아직까지도 좀처럼 안 되는 일이야, 라고 자기인식을 하면서도 이 말을 읽을 때마다, 나는 기운이 납니다. 이 말처럼 살려고 하는 것이 나의 얕은 마음의 용량을 조금씩 깎아서 깊게 해 줍니다.
동료의 이야기에 나왔던 교사의 「그릇」은 깊고,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앞에, 보이는 형태로 그것을 계속해서 내민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행한 사람의 마음의 용량과 행위가 똑 같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소란스러울 때의 처방전」으로 커다란 그릇을 학급에 가져간다 해도 왠지 우스울 뿐입니다.
수동적이지 않은 적극적인 인내도 잔(杯)과 같은 것입니다. 이 잔은 분명 부으면 부을수록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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