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6월 단오제 이야기
전날부터 세차게 내리는 빗줄기가 하도 오랜만이라서 반가웠다. 그래도 단오제를 실내에서 보내야 하다니, 아쉬웠다. 그래도 일찍부터 우산에, 그릇에, 색색이 옷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을 보니 살짝 번잡하면서 흥분된 잔치자리를 생각하게 했다.
곧바로 모둠으로 찾아온 1학년들이 기특했다. 자기 소개하고 강당에 모여서 ‘수릿날 단오라’를 불러재끼니 흥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얼른 교실로 돌아가서 수리취떡을 만들어 보자.
조물조물 주물러서 살짝 간도 배겠다. 납작하게 두드려서 참기름 발라 꾹 도장을 찍으니 “ 선생님, 기와 같아요” 그렇지. 그러면 기와처럼 한 장 한 장 잘라보자.
금세 한 접시, 하나만 먹어도 금방 배부를 만한 두툼한 거부터, 얇은 거, 조그만 거, 큰 거. 그래도 쑥 향기 솔솔 나는 떡을 만들어먹으니 건강해진 느낌이다. 새콤한 오미자 화채까지 먹으니 더운 여름도 끄떡 없겠다.
드디어 강당으로 가서 씨름을 하자고 하니 우리 모둠은 ‘에이, 질 거에요.’ 다른 모둠의 힘 센 아이들을 불러본다. “아니야. 얘들아. 모든 경기가 힘만으로 되는 건 아니지.”
그래서 사방에 청룡 현무 주작 백호가 모여 앉았다. 첫 번째는 각 모둠별 강자를 모으는 경기. 바람에 낙엽 날리듯 한 번의 발길질에 뒤집히는 아이들, 비온 뒤 붙어있는 잎사귀처럼 공격도 않고 양쪽의 공격에도 꿈쩍도 않고 자리를 지키는 아이, 이를 악다물고 쓰러뜨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며 한 아이만 공격하는 아이까지. 어찌어찌해서 모둠 내에서 강자들이 뽑혔다. 뽑힌 아이들은 기세 등등하다. 바로 전까지 ‘안하면 안돼요’ 하던 아이가 자기가 한 명을 뒤집고 살아남았다고 엄청 좋아했다. 목청껏 모둠을 응원하니 저학년 아이들은 그치지 않고 이름을 불러댔다. 응원 덕분인지 우리 모둠이 결승까지 갔다. 결승전 저학년은 주작과 현무. 고학년은 현무와 백호.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가서 공격할 대상을 찾고 슬금슬금 뒤로 도망가서 버텨보겠다는 아이도 보이지만 금세 심판의 주의를 듣고 앞으로 전진. 승리는 주작과 현무였다. 우리 모둠이 이겼다. 질 거라고 했지만 얘들아 이겼다.
중학과정 아이들은 두툼한 장대를 미는 씨름이다. 언젠가 한번은 장대가 부러진 적도 있었지. 엄청난 힘의 격돌이다. 이번은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장대가 붕붕 날아서 붙잡아주는 남자 선생님들이 힘에 겨워보였다. 그래도 승부는 2대 1로 주작과 현무의 연합이 이겼다.
그리고 전체 달팽이 놀이를 했다.
즐겁게 놀이를 마무리하고 올라와 창포물에 마련되어 있었다. 창포향이 살살 나니 고학년 아이들은 감기 싫단다. 그래도 창포물로 감으면 머릿결도 좋고 피부에도 좋다고 하며 달래서 감기 시작했다. 1, 2, 3학년 아이들은 금방 말랐다고 한 번 더 감겠단다. 창포물을 마련한 보람이 있네.
그렇게 살짝 젖은 머리에서 나는 향기 속에서 점심을 먹었다. 늦게 먹는 저학년 아이들을 기다려주는 언니들과 오빠들은 공도 주고 받고 피아노도 치며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단오날을 보냈다. 봄부터 농사일에 분주했던 손길을 잠시 내려놓고 샅바를 잡고 씨름을 하며 한숨을 돌렸던 선조들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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